홍콩과기대 조교수로 컴백한 ‘까치네’ 개발자 김성훈


“계속 좁은문을 선택할 겁니다.”


MIT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친 그는 조교수 부임을 내년 1월로 연기했다. 대신 6월부터 서울대 프로그래밍 연구실 방문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었다. 프로그래밍 연구실은 오랫동안 정적 분석 기술을 연구해 도구를 상용화 시켰다. 자신의 연구 분야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시너지를 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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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학교에 다니던 그는 전 세계적으로 검색엔진 돌풍이 불던 1993년도에 까치네 개발을 시작했다. 당시 코식(kor-seek) 이라는 수동으로 만들어 진 검색 엔진을 보고, “자동으로 해볼 수 없을까?”라는 발상으로 정보를 빠르게 찾게 만들고 싶었다. 한국형 검색 엔진은 한국 개발자가 만들겠다는 마음도 앞섰다. 주변에 많이 알리기 보다는 그가 먼저 사용했다.


혼자 개발하다 보니 완성도가 낮았다. 로봇 에이전트가 페이지를 수집해서 색인 하는 정도였다. 이마저도 페이지 수가 늘어나면서 유지가 어려웠다. 개선책을 찾던 중에 해시 알고리즘을 적용하기로 했다. 당시 학과 친구인 강종백 씨가 그 분야를 잘 다룬다는 얘기를 듣고 의기투합했다. 전산실에서 3개월을 지낸 끝에 개선된 새 버전을 개발했다. 미흡함이 많았지만 사용자로부터 격려 메일이 이어졌다.


“아라 BBS 같은 서로 잘 아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보니 격려와 칭찬이 많았어요. 당신 인터넷 문화는 격려의 문화였죠. 특히 연구자들이 중요한 자료를 찾아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많이 줬습니다. 마케팅 공부를 안 해서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기술을 찾다 보면 그게 사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는 까치네 개발을 뒤로 하고 1995년에 선배와 함께 나라비전을 창업했다. 한메일과 몇 달 차이를 두고 개발된 깨비메일은 빠르게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수익이 보장된 솔루션을 원했던 오너와 달리 그는 재미있고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걸 개발하길 원했다. 개발자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유학을 결심한 계기였다.


“기술적인 한계를 느꼈습니다. 구글 같은 회사는 직접 커널을 수정해서 개발을 한다죠. 바로 그런 갈증이었습니다. 5년 쯤 유학을 다녀오면 기술과 마케팅 사이에서 균형을 갖출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 공부가 더 필요했어요.”


개발만 하던 그의 유학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장 큰 건 언어였다. 웹 기술을 토론하는 수업 시간에 한 마디도 못하는 자신을 보고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적 배경도 턱없이 부족했다. 오토마타 이론이나 컴파일러 수업은 무척 생소했다. 급기야 지도 교수로부터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눈물이 날 뻔 했죠. 다행히 지도 교수님이 학부 수업을 듣도록 배려해 줬습니다. 다행히 A+를 맞고 자신감을 회복했어요” 그는 한동안 원인을 분석했다. 문제는 언어도, 민첩성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꾸준히 공부해야만 살아남는 시스템이라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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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소프트웨어 개발


그는 홍콩과기대에서 전공인 소프트웨어 공학을 가르칠 예정이다. 상용 제품 수준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목표로 수업을 진행할 거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기본 원리를 포함해서 버전 관리 툴 사용법, 버그 트래킹, 에러 처리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홍콩과기대는 1년짜리 수업도 개설이 가능합니다. 1학기에 개론 수업과 팀 편성을 하고 방학을 이용해 방중 프로젝트를, 2학기에는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방식” 이라고 귀띔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이론과 실무를 두루 경험한 그의 말이기에 신뢰가 갔다. 그의 실용주의 발상은 MIT 시절 지도 교수로부터 이어졌다. 지도 교수에게 논문 주제를 보였더니 “본인이 개발자라면 이걸 쓰겠냐”고 물었단다.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인정되지만 실무에서 쓰겠냐는 물음이었다. 페이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도구 개발도 병행하라는 말이다. 앞으로 그의 연구 방향도 현업과 개발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첫 번째 고려 사항이다.


선택의 순간, 늘 ‘좁은 문’을 선택


그는 선택의 순간에 늘 좁은 문을 선택했다. 박사 학위를 받자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업에서 러브콜이 왔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그도 학교보다는 기업행을 원했다. 하지만 MIT의 입학 제의를 선뜻 받아 들였다. “급여도 1/3 수준으로 적었고, 세계적인 천재들과 경쟁해야 된다는 부담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순간에선 좀 더 어려울 것 같은 길을 선택합니다. 좁은 문을 선택하는 게 일종의 좌우명 같은 겁니다. 미국 대학 두 곳에서도 임용 제의를 받았지만 홍콩과기대를 선택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중국인 텃세가 심하다고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던 그는 국내 벤처 기업들도 실력과 자원이 부족하다고 한계를 정해 놓지 말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한국 IT 기업의 중국 진출을 돕는 가교 역할을 해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요즘 그는 홍콩으로 가기 전 함께 연구할 박사 과정 학생을 공개적으로 모집(sestory.tistory.com)한다. 특이하게 선발 요건 중 하나가 개발 경험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개발해 볼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는 김성훈 씨는 10년 안에 버그 감지 분야에서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글 | 마이크로소프트웨어 문경수기자   사진, 동영상 |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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